'진재(眞宰, 참된 주재자)'는 만물(인간 포함)과 그들 사이의 사건들을 주재하는 초월적 존재,
'진군(眞君)'은 장기 등 수많은 부분들로 구성된 우리 몸을 통제하는 초월적 마음을 칭한다.
서양 사유에 비유하면 '진재'는 <신>, '진군'은 <영혼>에 해당할 수 있다 하겠다.
" '타자가 아니라면 나도 없고, 내가 아니라면 취할 것도 없다.'
이것도 근사한 말이지만 그렇게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만일 진군(참된 주재자)이 있다 해도 그 징후를 알 수 없다.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믿을 수 있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실정은 있지만 그 형체가 없다.
...
실정을 파악하든 파악할 수 없든, 그 참됨에 대해 보태거나 덜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장자가 초월적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것은 기존 이야기들(마주침의 존재론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운명적인 마주침이란 것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일종의 초월성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두 남녀는 '운명(숙명)'이니 '전생'이니 아니면 '영원'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슬픔과 불행의 만남에 대해서는 숙명(운명), 전생 혹은 영원을 떠올리지 않는다.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런 만남은 '우연(적인 사건)'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 한 사람은 불행한 마주침까지도 숙명이나 운명으로 믿으려 한다.
숙명이나 운명을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운명을 예정한 신이나 혹은 그 운명이 새겨진 영혼이라는 숙명론에 이른다.
불행까지도 신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국가체제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억압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로잡거나 개조할 생각을 하지 않을테니까...)
바로 이것이 국가가 종교를 비호하거나 묵인해온 이유다!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이 이제 보이는 듯 하다.
마주침(참됨)은 무언가 보태거나 덜어낼 수 없이 일어난다!
(그 참됨에 대해 보태거나 덜어내는 일은 하지 말자!!)
.
p.s.> 마주침의 행복을 지속하는 것도 마주침의 불행을 종결하는 것도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는 진재나 신 혹은 숙명이나 운명이 끼어들 여지란 없는 것이다.
(운명을 믿느라 마주침을 유지하려는 주체적 노력을 게을리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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