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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장자 & 강신주

선과 악을 넘어서 _위악(爲惡) 이야기 ... from 「강신주의 장자수업」

by 쾌오 2025. 8. 2.

" ...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爲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되고 악을 행하더라도(爲惡)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 "

 

위악(爲惡)! 말 그대로 '악을 행하라(다)'!!!

성현 중에 '악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이가 있을까?

 

장자는 말한다. 악을 행하되 들키지 마라! (또는 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

 

타자의 타자성, 문맥의 복수성!

장자의 사유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장자 이야기의 나침반이다.

 

현대 문명을 사는 나로서는 앎(지식)은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앎이 함축하는 '모든'주의(all-ism)의 핵심은 '일반명사'로 상징되는 언어의 추상성과

개체의 질적 차이를 사장(死藏)하는 '숫자'의 양화 가능성에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은 합리적이다" "유목민은 야만적이다" "회비는 만원씩 내세요" "소 10 마리를 동원해"

여기서 개체의 질적 고유성, 즉 단독성은 사장되고 만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추상적 사유나 양화된 사유가 지배자의 사유 혹은 지배에 도움을 주는 사유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경쟁과 인정을 중시하는 현대 문명(위계질서 체제)에서 문자와 숫자를 다루는 노동(정신노동), 즉 앎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앎이 앎의 주체인 자신도 지배하고 통제하게 되어 또한 자신의 단독성을 망각하거나 부정하게 된다.

 

선과 악은 국가(체제)가 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체들이 하기를 체제가 원하는 것이 선이라면, 반대로 개체들이 하지 않기를 체제가 원하는 것이 악이다. 

체제는 개체가 말을 잘 들으면 명성을 높여주고(칭찬하고) 반대로 말을 안 들으면 형벌을 가한다(비난한다).

 

그런데 체제가 싫어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위악(爲惡)! 들키지 말고 은밀하게!!"

 

음,,,

나의 욕망을 욕망하자, 긍정하자!

바로 이곳, 이 순간 그리고 당당하고 경쾌한 이 삶!!!

 

.

p.s. 1> 일반명사가 없다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분류할 수 없고, 숫자가 없다면 일반명사에 속하는 것들을

         양적으로 헤아릴 수 없다(문자와 숫자로 작동하는 앎은 타자의 고유성이나 문맥의 복수성을 무시하게 된다).

          인류가 자랑하는 문명, 정확히 말해 국가라는 지배와 복종의 체제가 문자와 숫자의 발명과 함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p.s. 2> 음, 내가 장자의 세계(강신주의 세계?)에 빠지게 된 이유다.

         우연히 보게 된 EBS 프로 한편, '악을 행하라? 들키지만 말고??' 충격적이었다!!!

         찾아보게 만들고 책을 사게 만들었고,,, 어느새 나는 그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