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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장자 & 강신주

남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보기 _총명(聰明) 이야기 ... from 「강신주의 장자수업」

by 쾌오 2025. 10. 31.

" 내가 누군가 '귀가 밝다(聰)'고 말하는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소리를 듣는다'

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누군가 '눈이 밝다(明)'고 말하는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모양을 본다'

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스스로 보지 않고 저것을 보는 경우나 스스로 얻지 않고 저것을 얻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얻으려는 것을 얻음이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음이 아니며,

다른사람이 맞다고 하는 것에 맞추려 함이지 자신이 맞추어야 할 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

 

...

 

국가(?)가 특정한 무언가를  팩트라고 강조하며 그것을 보라고 유혹하면

그건 '팩트'가 아닐 수 있다.

국가의 전횡을 막으려는 저항운동에 맞서, 시위로 인한 교통 체증에 짜증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팩트로 강조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에 데이터나 통계 기법까지 도입하면

'팩트 물신주의', '팩트 형이상학'이라는 날개까지 달 수 있다.

 

국가가 보라는 팩트만 보다 보면 우리는 국가의 노예로 전락한다.

모든 것을 국가의 시선으로만 보게 되니 우리의 눈은 자신의 눈이 아니라 국가의 눈이다.

 

앞의 '국가'라는 단어는 다른 단어로 교체될 수 있다.

'팩트 물신주의'가 '상품 물신주의'에서 온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 매스컴을 통한

상품 홍보 전략과 닮았다. 우리의 눈은 다시 자본의 눈, 타인(당신을 조종하는)의 눈이 된다.

 

장자는 말한다.

스스로 듣고 스스로 보라.

이 배움은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 삶을 살아내기 위해 감당해야만

하는 역경일 것이다!

 

.

p.s.> 릴케는 28살의 청년 말테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군주, 아버지, 선생님, 신 등)이 보라는 대로 보지 않기 위한, 자유를 향한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