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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장자 & 강신주

형이상학이라는 깊은 늪 _논변(論辯) 이야기 ... from 「강신주의 장자수업」

by 쾌오 2025. 10. 11.

" 그대와 내가 논변(論辯)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가 정말로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일까?

...

아니면 그대와 나 둘 중 하나는 옳고 나머지 하나는 그른 것일까?

아니면 그대와 나 모두 옳거나 혹은 그대와 나 모두 그른 것일까?

...

우리는 누구를 불러 옳고 그름을 판정하도록 해야 할까?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판정하라고 해야 할까?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그가 판정할 수 있겠는가?

...

그렇다면 나나 그대나 제삼자가 모두 살펴 알 수가 없으니, 다른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

 

...

 

아는 것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혹은 경험한 것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추론하는 것!

어느 경우든 추론은 실제 알거나 경험하게 되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추론을 통해 상상한 것이 선입견이 되어 진실과 마주치는 것을 방해하기 쉬우니까)

 

그 추론 중에 정말 위험한 것은 현실적 경험 세계를 하나의 착각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입장일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형이상학은 현실에 기대어 검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삶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을 추론하면 그것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가 없다!

 

장자가 하고픈 말은 아마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침묵하라'가 아닐지......

 

또는 "잘도 그러겠다!"

 

.

p.s.> '상지(相知)'라는 말이 나온다. 강신주는 이를 '살펴서 안다'로 번역한다.

        "나나 그대가 살펴 알 수가 없다면, 다른 제삼자도 깜깜하기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