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여량이라는 곳을 관광하고 있었다.
(...)
공자가 그(격류를 헤엄치는 사나이)에게 물어보았다.
" (...) 물을 건너는 데 길[道]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네."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없네! 내게는 길이 없네.
나는 과거[故]에서 시작했으나 삶[性]에 깃들어 명령[命]을 이루고 있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나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물속에서 밀어내면 나도 같이 밀려나오지.
물의 길을 따를 뿐,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네. 이것이 내가 물을 건너는 방법이야."
그러자 공자가 물어보았다.
"과거에서 시작했으나 삶에 깃들어 명령을 이룬다는 그대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내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했던 것이 과거이고, 내가 물에 깃들어 물에 편해진 것이 삶이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명령이야."
...
관광객과 현지인! 동일한 공간에 있어도 두 부류의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관조하는 공간(풍경)과 살아가는 공간(삶을 영위하는 곳)...
살아보지 않은 곳 혹은 살 것 같지 않은 곳이 관광객의 표적이다.
다시 들를 가능성이 없다(적다)는 판단 때문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풍광을 담아두려는 것이다.
공자와 제자들로 이루어진 다수가 둑 위의 땅에 있고, 사나이는 둑 바로 밑 물 위에 있다.
땅과 물 사이의 거리,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의 거리는 질적으로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묘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사나이는 공자 일행이 떠나면 언제든 땅으로 올라오겠지만, 공자 일행은 결코 물로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
사나이는 땅을 떠나 물에 이르게 된 자신의 역사를 말해준다.
영토국가에 포획되는 정착민의 생활을 버리고 지배와 복종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목민적 삶을 상징한다.
(땅에서도 살 수 있고 물에서도 살 수 있다는 당당한 선언이다!)
정착생활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물 위에 있다는 것이 위험한 삶으로 보일 것이다.
국가주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국가 바깥이 더 무섭고 척박하다고 믿을수록
피지배계급은 억압과 착취를 감당할 테니 말이다.
부단히 떠나라는 장자의 이야기들...
좋은 곳이 있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싫으면 떠나는 거라는,,,,,,
.
p.s.> 여기서도 "길은 걸어서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는 슬로건이 반복된다.
길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이 '걸어감', 즉 행(行)이라는,,, 물의 길을 따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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