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魯)나라에 선표(單豹)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위 굴 속에 살고 골짜기 물을 마시며 민중들과 이익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70세가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안색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행하게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버렸습니다.
또 장의(張毅)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높은 문을 가진 귀족의 집이든 문 대신 발을 사용하는 민중의 집이든 달려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40세에 몸 안의 열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선표는 그의 안을 길렀으나 호랑이가 그의 바깥을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장의는 그의 바깥을 길렀지만 병이 그의 안을 공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중 뒤처진 놈을 채찍질하지 않은 겁니다."
...
정반합(正反合)으로 대변되는 헤겔의 변증법과 좀 다른 접근이다.
(이론과 실천, 존재와 무,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 주체와 타자, 마음과 몸, 이성과 감성 등
대립적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관계가 세박자로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이미지)
두 다리로 걸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걸음)을 떠올려보자.
오른다리, 왼다리는 계속 교차하여 나아간다(이 과정에서 스치는(합?) 순간이 있다.).
장자에게 있어 합은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쪽 다리로는 나아갈 수 없거나 어렵다는,,, 두다리의 변증법!
위 이야기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피상적으로 마음만 수양해서도 안 되고 몸에만 신경써서도 안 된다는 이해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선표가 죽은 이유는 그가 자유의 공동체든 억압의 공동체든 공동체 일반을 부정했기 때문이고,
장의가 죽은 이유는 그가 상관없이 공동체 일반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표는 자유의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고, 장의는 억압의 공동체를 떠나야 했다.
선표의 뒤처진 양(다리)은 공동체를 혐오하는 그의 마음이었고
장의의 뒤처진 양은 억압의 공동체라도 긍정하는 그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음,,, 즉 자유와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줄 공동체를 만들거나 그런 곳을 찾아 떠나라는 것인데,
그러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가 ...... 쩝!
.
p.s.> 그래도 장자는 장의의 삶보다는 선표의 삶에 그나마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장의는 40세에, 선표는 70세에 죽으니까......
(억압의 공동체에 있는 것보다 좌우지간 떠나는 게 낫다는 상징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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