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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장자 & 강신주

문턱에서 길을 보며 _도추(道樞) 이야기 ... from 「강신주의 장자수업」

by 쾌오 2026. 1. 17.

'사물 중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사물 중 이건 아닌 것이 없다.

스스로를 저것이라 여기면 (이것은)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를 이것이라고 여기면 (저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으로 부터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 따른다고 말한다.'

(...)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생긴다 할지라도 동시에 생기는 것은 동시에 죽는 것이고

동시에 죽는 것은 동시에 생긴 것이며, 동시에 허용되는 것은 동시에 허용되지 않는 것이고

동시에 허용되지 않는 것은 동시에 허용되는 것이다.

옳음을 따르는 것이 그름을 따르는 것이고 그름을 따르는 것이 옳음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긴다는 견해를) 따르지 않고

사물을 '자연스러움[天]'에서 비추어 보는데, 이 또한 인시(因是)다.

 

이것은 또한 저것이고 저것은 또한 이것이다.

저것 또한 하나의 시비(是非)고, 이것 또한 하나의 시비다.

그렇다면 저것과 이것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이 자기 짝을 얻지 않는 경우를 '길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른다.

지도리는 처음부터 그 '원의 중앙[環中]'을 얻어야 무한한 것에 대응한다.

그렇게 되면 옳음도 하나의 무한이 되고, 그름도 하나의 무한이 된다.

 

...

 

피시방생지설(彼是方生之說, 이것과 저것은 동시에 생긴다)은 혜시의 통찰로 '벽의 이미지'가 있다.

벽이 세워지는 순간 이쪽과 저쪽, 이것과 저것, 나아가 주체와 타자가 넘을 수 없는 간극을 가지고 분리된다

 

장자의 문(門) 이미지. 추(樞)! '문의 지도리'로 장자의 통찰은 여기에서도 응축된다.

벽과 달리 문의 경우 우리는 안과 밖 혹은 이것과 저것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아니면(문이 열려져 있는 경우 또는 문턱(안과 밖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문을 여닫는 걸 가능하게 하는 경첩, 바로 지도리이다.

 

장자는 더 숙고하는지도 모른다.

닫히는 문만이 열릴 수 있다!

닫아야 할 때(구분) 닫을 수 없는 문, 열어야 할 때(해체) 열리지 않는 문...

 

결국 잘 닫고(구분하고) 잘 열자(구분을 해체)는,,,

 

.

p.s.> 혜시의 유사한(?) 테제 하나 추가한다.

        '일방중방예(日方中方睨), 물방생방사(物方生方死)'

        해가 정중앙에 떠 있을 때가 기울어지는 때, 사물이 태어났을 때가 죽어가는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