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손재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앎을 넘어 그것을 모두 실천한 사람이다.
장례를 간소히 치르려 해도 뜻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미 간소히 한 것이 있다.
맹손재는 태어난 이유나 죽은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변화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 태어났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차 변화한다면, 어떻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장차 변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이미 변화했었음을 알겠는가?
단지 나도 그렇지만 너도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는 몸이 망가지더라도 마음을 소모하지 않았고,
몸을 떠나려해도 죽음에 신경쓰지 않는다. (...)
지금 우리는 자신을 나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내가 아님을 알겠는가?
너는 너 자신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고,
혹은 너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꿈꿀 수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나도 깨어 있는 자인지 아니면 꿈꾸고 있는 자인지 모르겠구나!"
...
모르는 사람의 딸(그, 3인칭)이 죽었을 때와 애지중지하던 내 딸(너, 2인칭)이 죽었을 때,
우리가 죽음을 느끼는 강도는 확연히 다르다.
당연히 3인칭의 죽음보다 2인칭의 죽음(부재)에 고통과 슬픔을 강하게 느낀다.
바로 여기서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정착민적이라는 걸 직감해야 한다.
정착생활은 내 땅, 내 집, 내 사람 등 소유의식(인문학적 의미의 2인칭)을 강화시킨다.
유목민은 마음에 드는 새로운 땅을 찾아 기꺼이 떠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임시 정착지는 마음에 들어 머물기에 2인칭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이기에
3인칭적인 곳이기도 하다(2.5인칭의 땅, 바로 그것이 땅에 대해 갖는 감각의 핵심이다.).
정착민처럼 정착지(A)를 떠나게 되었다고 '-A'로, 다시 말해 A의 부재로 경험하지 않는다.
떠나온 A지역에 대한 기억은 회한이나 슬픔의 정조가 아니라 좋았던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A지역에서는 A지역을 긍정하고 B지역에서는 B지역을 긍정한다.
맹손재에게 어머니는 먼저 떠난 유목민이었다.
삶은 삶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하는,,,,,,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만이 발달시킨 2.5인칭의 감각!
죽음은 머물기와 떠나기의 사건이라고, 2.5인칭의 감각으로 바라보는 장자다!!!
.
p.s.> 다음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한 이야기다.
"맹손재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은 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를 지낼 때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장례를 잘 치른 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내실이 없는데도
그런 명성을 얻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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