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爲是), 인시(因是) _어떻게 살 것인가? I ... from 「강신주의 장자수업」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날,
나뭇잎들이(시골집 처마가) 만든 그늘 아래 평상에 누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다 어느새 단잠에 빠져든다.
한낮의 나른한 꿈에서 깨고 나면 ...
...
어디서 들었던 얘기와 비슷한 것 같지 않은지,,,
'호접몽(나비꿈)' 이야기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장자"를 알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장자가 나에게 주는 영감(가르침?)은 어마어마한데,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위시(爲是), 인시(因是)....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한 깨달음을 주었다.
'위시'란, "이것(是)이라 생각한다, 간주한다, 여긴다(爲)." 라는 뜻이고,
'인시'란, "이것(是)에 따른다(因)."의 뜻으로
위시는 능동의 의미(내가 사유 주체)가 강하고, 인시는 수동의 의미(상대(타자)가 원인)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위시'는 나의 경험(세계)을 기준으로 상대(타자)를 구분하고 비교한다. 즉 우열의 가치평가를 하게 되고, 문제는 가치가 낮다고 평가(구분)한 것과는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시'는 반대로 상대(타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긍정) 의미가 강하다. 그대로 받아들이니 '이것'과 나와의 사이에 길(道)이 생겨 소통이 되고 소통이 되면 '얻음(得)'이 된다.
이처럼 '위시'에서 '인시'로의 전환은 "비교되는 이것"이 "비교 불가능한 이것"으로의 전환으로서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인생에서 주체성이 중요하고 그것을 견고히 쌓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여겨가면서
수동보다는 능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타자들을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것으로(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긍정하라는 것!
그것이 "인시"라는 것이다.
음,,, 내 삶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혀졌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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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이것은 '타자'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긍정한다는 것.
예를 들면,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못생겼어.", "나는 스펙이 부족해." 이것도 '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