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그리고 나의 삶

붓다가 다윈을 만났을 때 ... from 「불교는 왜 진실인가」

쾌오 2026. 11. 6. 11:10

진화심리학은 '자연선택(진화)'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들었는지 연구하는 현대의 학문이다.

 

자연선택(생존과 번식)은 한마디로 나만 특별히 여기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특별하다"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유리한 지각과 신념을 갖도록 인간의 마음을 설계했고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옳은' 선택을 내리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느낌"이다.

 

그 "느낌들(그리고 그 느낌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지각)"이 실재에 대해 진실인지는 자연선택의 관심사가 아니다.

또 자연선택은 인간이 행복하게 사느냐, 불행하게 사느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느낌은 뇌가 생각의 중요도를 평가해 어떤 생각이 의식 안으로 들어올지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결정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지어내고 모든 지각에는 느낌이 배어 있다.

생명체는 '느낌'의 형식으로 사물에 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불안(걱정)이라는 느낌은 당신을 안전하도록 조치를 취하게 하고 이는 유전자 전파에 유리했다.

 

결국 우리 뇌에서는 어떤 느낌의 모듈이 우세하냐에 따라 그 모듈이 의식을 장악한다.

 

즉,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의식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무아(無我))는 얘기다.

매순간 번갈아가면 삶의 통제권을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자아들'의 집합이 있을 뿐이다.

 

...

 

불교의 방대한 가르침은 나쁜 소식/좋은 소식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

 

나쁜 소식은,

'우리의 삶이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하고, 우리 인간은 미망(迷妄, 무지 또는 무명)으로 가득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좋은 소식은,

이 두 가지 문제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문제로, 우리가 미망을 제거하면(깨달음)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미망이란,

진화에 의한 우리 인간은 '느낌'에 의해 무의식적으로(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자유의지로(선택하여) 행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전 "진화 & 화재 경보기" 얘기와 다시 만난다. 문명은 자연 상태에서의 위험을 대부분 제거했다.

 

우리의 센서가, 뇌가 화재 경보기처럼 작동하는 것은, 현대(문명)에서는 (기술적?) 결함이 된다.

우리 마음(진화 뇌)은 대부분의 가짜 신호에 따라 화를 내고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고 슬퍼하고

즉, 진짜로는 괴롭지 않은 일인데 괴로워한다.

 

느낌에 휘둘린다.

 

그러나 '어디에도 서지 않는 관점'에서 보면 느낌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본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온통 '특정 관점에 관한 것'이지만 불교의 깨달음은 이러한 관점들을 모두 초월하려는 시도이다.

 

느낌으로 인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느낌이 당신을 '대신해' 판단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즉, 느낌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깨어있는 알아차림).

 

과하게 반응하는 느낌은 단지 신호(시그널), 알람(경보)으로 대부분 오작동(가짜)이나

우리(인간)의 진화 자동 시스템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자동 기계).

 

중간에 그 신호(느낌)의 가짜 여부를 확인해야(알아차림, 마음챙김(명상) 등) 하는 이유다.

 

진정한 자유의지는 '거부권 행사'라 했다.

 

즉, 괴로움은 선택의 문제이다!

 

.

p.s.> 하나. 불교에서의 고통(괴로움)은 '불만족'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신의 모든 괴로움은 만족하지 못함에 있음이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 사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사람은 깨달은 자와 같다.) 

 

         하나. 당신은 자신의 삶이라는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단지 영화를 관람할 뿐이다. "(자동 생성) 영화가 당신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