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그리고 나의 삶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_ ...침묵

쾌오 2026. 9. 4. 08:0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다시 본다.

 

예전에는 '법륜스님은 지혜롭고 재치있게 말(답)을 잘 하시는 분이구나...' 했다.

많이 보다 보니, '어, 나도 답을 해 줄 수 있겠는데,,,'

(하룻 강아지였다. 부끄러울 뿐,,,)

 

지금은 주의 깊게 경청하시는 분이란 게 보인다.

그때처럼 엄청 많이, 또 보지만 나랑은 차원이 다르신 분이구나를 느낀다.

 

'경청'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보통 남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들어주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리고 물어봤을 때에만 대답한다.

그것도 "나의 경우에는, 나같으면 ... "식으로 경험, 한 예를 들듯이 말한다.

이게 '경청'이다!

 

...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논리철학 논고》의 유명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사실 2천여 년전 석가모니는 위의 내용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리고 수행의 관점과 연계시키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즉,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만 하고(무기無記*), 말할 필요가 없는 것에도 침묵해야만 한다.

침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침묵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나의 요즘 수행은 위의 두 내용을 합친(무기 & 경청),

 

"말할 필요가 없는 것에 침묵, 그리고 물어봤을 때에만 대답한다."다.

 

그러나 생각(?)보다 무지 어렵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의 기준은? 대답의 범위는??

기준과 범위가 적정하지 못하면 그냥 오지라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아낀다!

 

.

p.s.> *무기(無記) :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대해 석가모니가 '기록하지 않는다', 즉 대답하지 않고 침묵한 것을 뜻한다.

        진리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당면한 고통의 소멸에 집중!).

        대신 주제를 바꿔 비유와 가르침을 주어, 질문자가 스스로 모순을 깨닫거나 (질문의) 무의미함을 알게 이끌었다.